(연재)아버지의 일기(94~98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94~98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10.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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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94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12일(四月十二日)목(木) 맑음
지금도 일기장日記帳에 붓을 옮기나 거기에 아무런 자극刺戟도 없으며 도움도 없는 듯싶다.
유달리 일찍이 학교學校로 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조금 후에 여학생女學生들이 떼를 지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려다보이는 상주읍尙州邑, 매우 조화調和있게 짜여 모두들 따뜻한 가정을 이루어 신성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심리心理 선생님으로부터 작일昨日, 시험試驗 본 남녀 평균男女平均 점수點數를 발표發表하였다.
여기서 최고점最高點이 여학생女學生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였다.
우리는 부끄럽기 말할 수 없으며 나 자신 부끄럽고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싸워보자! 그날까지 담임擔任 선생님이 내일 대구大邱 고향 가신다고 말씀하였다.
 

아버지의 일기 95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13일(四月十三日)금(金)맑음
밥숟가락을 놓자 곧 배움으로 갔었다.
매우 일찍 하였다.
쉬는 시간이면 뒤 잔디밭에 구불면서107 동무들과 놀다가는 시간의 흐름으로 또 수업授業을 하는 것이다.
시간을 다 마치고 하교 시下校時에 김연권 선생님이 오시었다.
선생님은 매우 분개하신 얼굴(노안怒顔)로 우리에게 대對하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틀 전에 내가 쓰레기통에 선안善顔의 상象을 무의적無意的으로 그리어 둔 것을 오늘에 거기에는 확실히 조작造作하고, 또는 글로 여러 가지 낙서落書를 한 것이 김 선생님에게 발견되어 조사調査가 되었다.
여기서 걱정의 침묵沈?이 계속되던 중, 어떠한 타교생他校生이 하였 다는 말에 의하여 선생님은 노怒하신 기분氣分을 조금 참으시고 종례를 마치었다.
나중에 나는 본교本校에 가서 김 선생님을 찾아서 사실事實대로 이야기한즉, 나의 뺨을 갈기었다.
나는 달게 받았다.
이것이 나에게는 좋은 지도指導라는 것을 생각하던 중, 또한 교감校監 선생님으로부터 나에게 참으로 뼈아픈 이야기를 하여 주시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決心하였다.
벌써 상중尙中에 입학入學하여 두 번째였다.
여러 선생님에게 미안함과 대구大邱에 가신 담임擔任 선생님을 대對할 면목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나로부터 원인原因이 되었다.
나로 하여금 우리 학급學級을 소란하게 만들었다.
석반夕飯을 먹고 곰곰이 반성反省하였다.
내일의 일과日課를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일기 96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14일(四月十四日)토(土) 맑음
작일昨日, 그 일事에 대對하여 궁금하여 일찍이 가서 김연권 선생님을 기다리었다.
기다리던 중, 마침 오시어 어제 일에 대對하여 반성反省을 하였다.
선생님 역시 나에게 기쁜 마음과 얼굴로 나를 훈도訓導하였다.
훈도訓導를 받고 난 후로부터 마음이 상쾌하였다.
오늘부터 깨끗한 생활生活, 새 출발出發을 하여 보자고 결심決心하였다.
오후午後에 운동장運動場 모래운반을 한 후로 곧 집으로 갔다.
갈 때는 여러 동무들과 도보徒步로 갔다.
날은 따뜻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어 주고 있다.
4시경時頃에 집에 도착到着하였다.
여기서 오리실 칠재七才 어른께서 세상世上을 떠나셨다는 말에 깜짝 놀라 곧 가보았다.
연然이나 벌써, 저 세상世上으로!
 

아버지의 일기 97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15일(四月十五日)일(日) 맑음
맑은 아침이다.
연然이나 집에 있어 봐도 반가워하고 기쁘게 하여 주는 이 아무도 없어, 토요일土曜日에 공부工夫하려고 예정豫定하여 책 몇 권을 가지고 왔으나, 그 책 읽지 못하고 그대로 아침을 먹고 구슬픈 고향을 떠나왔다.
언제나 그립고 정든 내 고향이 지금은 오직 눈물의 내 고향, 고독孤獨의 내 고향故鄕이 되고 말았다.
부친父親께서는 이 자者를 자식子息이라고 사랑하여 매씨妹氏로부터 책상을 짜놓았다.
그 책상 역시 나에겐 그리 반갑고 기쁘게 하여 주지 않았다.
‘어머니’ 안 계신 이 땅에는 마음 둘 곳 어디에도 없어 나에겐 남모르는 피눈물과 비애悲哀만이 있을 따름이다.날은 매우 따뜻하다.
걸어오는 중, 어느덧 남적 재 마루에 올랐다.
넓은 새리 들 주위로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이며 남쪽으로는 그 높고 낮은 집은 납작 엎드리어 있다.
하숙집에 와서 본즉 1시경時頃이다.
창원 군의 이상異常, 오늘은 결혼結婚을 했음에도 불구不拘하고 집에 가지 않고 부모父母님의 걱정을 시키다. (어찌 된 까닭인고?)
 

아버지의 일기 98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16일(四月十六日)월(月) 맑음
창원 군과 둘이 새 아침을 맞이하였다.
이번 주일週日에는 주번週番이기에 일찍이 갔다.
교감校監 선생님의 훈화訓話 말씀, 참으로 현하現下,109 우리 남하南下한 겨레의 설움을 말씀하시며 우리 학생學生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참으로 겨레의 참된 정情으로 애호愛護하자고 말씀하셨다.
담임擔任 선생님이 대구大邱에 가신 관계로 학생學生들로 하여금 약간의 자유自由스러운 빛을 띠게 하였다.
교육敎育시간을 심리心理시간으로 변경變更하였다.
오늘은 4시간으로 수업授業을 마치었다.
다시금, 본교本校로 와서 주감週監 선생님 허가許可를 맡아 집으로 오는 중, 다시금 오늘의 일과日課를 반성反省하며 지나간 교감校監 선생님의 나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였다.
밤이다.
석반夕飯을 마치고 이야기하던 중,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나가 본즉 귀운 형과 순익 군과의 말다툼으로 나중에는 좋지 못한 결과結果를 가지고 왔다.
밤에는 잠에 취하여 어느덧 동창東窓에 아침 햇빛과 함께 일어났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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