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09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7일(四月二十七日)금(金)비,구름
볼그레한 잎을 피어 그 화창하게 핀 복사꽃119, 아침부터 방긋방긋 웃으며 그칠 줄 모르며 온갖 벗 나무120를 부르던 복사꽃, 다른 온갖 꽃이 꿈꾸던 순간 유달리 일찍이 피어, 이 초춘初春의 반가움에 첫사랑을 하고 있던 그 아름다운 복사꽃이, 불과 한 ‘달’을 못 지나 새벽이슬 부는 미풍微風에 한 송이씩 차차 날려, 그만 낙하落下란 이름을 얻어 그 추지운121 땅 위에 떨어진 복사꽃, 남달리 일찍 피어 남달리 일찍 떨어지는 그 복사꽃, 나는 그 나무를 위로하는 것이다.
지금은 몇 송이 남은 꽃송이가 복사꽃이란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程度이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모습을 가지고 있다.
비 내린 아침 나는 식사당번食事當番이다.
*봉숭아꽃.
*친구 나무를 이르는 표현이다.
*축축하다.
최춘매 군이 일찍이 짐을 가지고 왔다.
곧 학교學校로 갔다.
벌써 교장校長 선생님이 교수敎授하시었다.
시험試驗이란 두 글자로 남녀학생男女學生들의 우울성憂鬱性을 품고 있다.
아버지의 일기 110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8일(四月二十八日)토(土)맑음
어제부터 내리는 꽃비가 오늘 아침에도 온갖 자라는 초목草木을 어루만지듯이 솔솔 내리고 있다.
앞 갑장산甲長山, 뒤 천봉산 그 씩씩한 모습 우뚝한 기세氣勢 아침 안개에 싸여 그 완연完然한 자태姿態 보일 듯 말 듯하다.
내리는 비를 맞아 가며 학교學校로 갔다.
수업授業은 3시, 하교 시下校時 고사 일정考査日程을 발표하시었다.
나는 불합격不合格이라는 지난 부끄러운 일로 인因하여,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비웃을 것 같은 감感이 들어 불쾌성不快性을 띠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본교本校에는 우리 국군國軍을 실은 자동차自動車가 운동장運動場에 들어왔다가 점호點呼를 마친 후, 곧 함창咸昌으로 출발出發하였다.
나는 곧 정완廷完에게 나의 화학숙제化學宿題한 답안答案을 찾으러 갔다.
오늘도 나무가 떨어져 주인댁에 부탁하여 고맙게 저녁을 지어 먹다.
아버지의 일기 111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9일(四月二十九日)일(日)맑음
고사考査일을 앞에 두고 학습學習하여 보려고 작일昨日, 토요일에도 가지 않고 순익의 방에서 아침을 맞이하였다.
막 일어나자마자, 밤에 꿈이 매우 이상하여 집이 궁금해서 아무리 하여도 미심未審되어 곧 새벽에 집을 향向하여 갔다.
가는 한편, 내일의 시험일試驗日이 걱정되어 되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나 모든 것을 뿌리치고 달리었다.
양정陽亭까지 가서 우리 동리洞里 한 아이를 만나 우리 집 문안問安을 하여 본즉, 모두 별다른 일이 없다 하기에 안심安心을 하고 그제야 발걸음을 느리게 걸었다.
집에 다다르니 아버지께서는 평안平安하시고 또한 부친父親의 얼굴
을 보았을 때 기쁨의 반가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함창咸昌계시는 숙부叔父 어른께서도 오시다.
오늘 공검국민학교恭儉國民學校 학예회일學藝會日이다.
어린 국민학생國民學生들이 웃음 띤 얼굴로….
곧 출발出發하여 만산리蔓山里에 다다랐다.
아버지의 일기 112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30일(四月三十日)월(月) 맑음
오늘의 고사考査,122 국어國語, 수학數學, 물상物象를 위해 어제 밤늦게까지 자습自習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본즉, 다 기울어져 가는 달님 저 서쪽 공간에 걸리어 있다.
옆 텃밭 감나무 어린 잎, 아름다운 복사꽃 떨어지는 뒤를 이어 뾰족 뾰족 잎을 벌리고 있다.
학교學校로 갔다.
거기에는 벌써부터 많이 모여 서로들, 오늘의 시험試驗에 고민苦悶을 갖고 있다.
국어시험國語試驗은 우리들이 자습自習한 데에서는 몇 문제 아니며, 모두가 상식적常識的인 문제로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3교시校時 물상物象이다.
이것 역시 작일 야昨日夜123 좀 더 완전完全하게 확실성確實性 있게 자
* 시험試驗.
*어젯밤.
습自習하였다면 가可히 어렵지 않는 문제問題이나 자신自信이 없었다.
완전完全 나의 실력實力을 가지자.
아버지의 일기 113
1951년(檀紀四二八四年)5월5일(五月五日)토(土)맑음
오늘도 내 마음 저 높은 공간空間에 떠도는 구름! 모든 것이 싫고 이 속계俗界가 귀찮아 남모르게 혼자 앉아 가련한 나의 생애生涯를 원망하였다.
학교學校에서 지나간 추억追憶의 한 토막을 추상抽象케 하는 김종화金鐘和 형을 만났다.
이 형은 본교本校 4학년學年에 편입編入한 것이었다.
한편 반갑고, 한편 부끄러운 감感이 들었다.
수업授業을 마친 후, 이정배 군과 외서국민학교外西國民學校 학예회學藝會를 견학見學할 예정豫定으로 또한 누님 댁으로 다녀가려고 하였으나, 도중途中 벌써 다 마치었다는 아동兒童의 말에 나는 정배와 작별作別하여 집으로! 어쩐지 나의 발걸음 ‘어머니’로 옮기게 되었다.
생시生時에 그렇게 반가워하시던 ‘어머니’ 모습, 지금은 다만 누런 황천黃泉에 한갓 쓸쓸히 흙무덤으로 약간의 잔디풀만이 이 자者의 가슴을 애태우는 것이다.
여기서 떠나기 싫고 나 언제 ‘어머니’ 그 모습 어릴 때 어리광 부릴 때와 같이 나 마음껏 옆에 앉아 말하여 볼까! 아무리 울고 불러도 어디서 말 한 마디 없는 ‘어머니’ 무덤, 낮이면 따뜻한 햇볕이 ‘어머니’ 무덤을 옹호할 것이며 속인俗人의 하는 소리 듣겠지만! 밤이면 그 누가 옹호하여 줄 것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둡고 어두운 검은 밤이면 그 누가 한 마디 이야기할 것인가? 아! 무정無情타!우리네 인생人生 조물주造物主도 한심도 하지 이러한 모순세상矛盾世上을 마련하였을까?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금 붓을 쥔다.
남몰래 우는 나의 모습을 멀리서 한 부인婦人이 바라보며 그 부인婦人 역시, 나의 슬픔을 동고同苦하였는지 서서 있었다.
아니다.
이 넓은 세상世上에는 나보다도 더한 고독孤獨, 비애悲哀를 하는 자者가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이래심移來心124에서 집으로 갔다.
* ‘마음을 달래다’로 해석된다.
아버지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눈물겹게 만들어 주었다.
근심걱정으로 말미암아 노쇠老衰한데다가 더욱더 노쇠하여졌다.
근간近間에 와서 밥 짓는 소녀少女아이 역시 아버지의 걱정을 더욱더 시키는 것이었다.
또다시 생각이 났다.
내 자식子息이 아니면 아무리 하여도 안 된다.
일一 계집아이 소녀少女가 왜! 불안감不安感 속에 하루하루의 일과日課를 보내시는 부친父親의 걱정을 시키는 것일까?
동리洞里사람들 모두 모여 사립을 나서며 우리의 가산家産을, 일 동리一洞里 부인婦人네들에게로부터 쓰러져가는 우리 집안의 일을 그들의 입으로 흘러나오게 하였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소녀少女, 죄罪 없는 그 소녀少女 아무 잘못이 없다.
결국結局은 다 넘어가는 우리 가산家産이 그 첫 성인成因이 될 것이다.
고모님이 지어주신 옷을 입고 등에 쌀을 짊어지고 곧 상주尙州로!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