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선대 '용당포' 이야기, 영국과 한국의 첫만남!
부산 신선대 '용당포' 이야기, 영국과 한국의 첫만남!
  • 김상출
  • 승인 2019.07.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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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연합뉴스=김상출 기자)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에는 신선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다. 산세가 못을 둘러싼 용의 형상과 같다고해서 '용당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곳은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유람을 즐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선대 최정상의 기념비에는 '1797년 10월 윌리엄 브로우턴 함장과 승무원들은 영국 해군 소속 "프로비던스"호의 부속선을 타고 이곳 용당포에 상륙하여 주민들과 접촉을 가졌던 최초의 영국인들이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문이 남겨져 있다.

(브로우턴 함장의 항해일기 중에서)
이른 아침 낯선 우리 배를 보기위해 호기심에 찬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가득 실은 작은 배들이 우리 배를 둘러쌌다. 그들은 누볐거나 이중천으로 된 흰 무명천의 헐렁한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중 일부는 크고 헐렁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여자들은 속바지 위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남녀 모두가 흰 무명 버선과 볏짚으로 만든 짚신을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묶어 상투를 틀었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모으고 땋아서 머리위에 올려 놓았다.

우리 배에서 가까운 남쪽에 있는산(신선대)으로 올라가 방위각을 재기 위하여 뭍으로 나갔다.정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는 매우 넓었고 항구의 모든 부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이 산의 강한 자력으로 인해 나침반의 바늘이 정확한 방향을 가르키지 못하고 항상 북쪽이 아닌 동쪽을 가르키므로 방위각 측정은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가파르며 높고 튀어나온 이 산이 우리 나침반 바늘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이 산의 이름을 "자석의 머리" 라고 표기 하였다.

(조선 왕조 실록-정조20년  음력 1797년 9월 6일)
임신일에 경상도 관찰사 이형원이 달려와서 다음과 같이 적어 올렸다. "이상한 나라의 배 한 척이 표류하여 동래 용당포 앞바다에 닿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코가 높고 눈이 파랬습니다.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여 닿게 된 연유를 한나라,청나라,왜국,몽고의 언어로 물어 보았으나 모두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붓을 주어 글로 써 보라고 하였더니 글자의 모습이 구름이 낀 산과 같았고 그림을 그려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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