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연합뉴스=김순희 기자) 2019년 어느 여름날 가랑비와 궂은비가 번갈아 내리던 날 '이삭의 집' 문을 두드렸다. 들어서기 전부터 풍기는 기름 냄새와 구수한 멸치장국 냄새가 주영숙 원장님의 환한 미소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반겨준다.
이곳은 1996년 6월 금련산 자락 아래에 자리를 잡아 가정해체, 방임, 빈곤, 유기 등으로 가정해체를 경험한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껴안고 자라며 치유하는 보금자리이다.
숱한 추억과 사랑, 아픔과 성장을 번갈아 고향이 된 이곳에 반가운 가족들의 방문소식이 들려왔다. 원장님의 든든한 아들 이기훈씨와 강기훈씨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이 빨라졌다.
역시나 엄마 닮아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 둘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직장생활로 지쳐 꿀 같은 여름휴가를 멋지게 보낼 계획에 바쁠 20대 후반 청년이 선택한 휴가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밥이 먹고 싶었다고 그냥 엄마가 해 주는 밥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노을이 드리워진 저녁 집집마다 연기 피어오르며 골목길 헤집어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엄마의 높은 목소리 그리고 푸짐한 집 밥.
소박하기 그지없는 국수라는 메뉴에 담긴 정성을 보고 필자는 주부로서 반성을 해 본다. 고명 켜켜이 쌓아진 도자기 그릇에 담겨진 국수와 고소한 향이 가득했던 각종 튀김을 보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님 온다고 특별한 거냐며 너스레를 떨던 필자는 이곳을 떠나 자립한 지 한참이나 지난 청년들을 중력처럼 끌어당긴 이유는 바로 집 밥, 고향이었다.
요즘은 ‘힐링 푸드‘라는 단어가 꽤나 인상적이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그 만큼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과 철학, 추억 그에 따른 행복감이 치유의 기능까지 있기 때문이리라.
원장님은 설립초기에는 정부 지원 없이 기초생활수급비와 순수후원금으로 이곳을 꾸려왔다. 이 집의 가훈은 ‘역지사지’와 ‘양대로’인데 ‘양대로 해보라, 양대로 먹어라’이다. 무엇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양대로 해 보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안정적인 상태로 이끌고 싶은 독특한 치유방법이라고 알려주셨다.
필자 역시 이곳의 푸짐한 식단과 정성 가득함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국수 한 그릇에 담긴 훈훈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싶다.
서울로 올라 갈 아들이 주문한 음식 고추장볶음 만들 생각에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시며 내내 싱글벙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는다.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여러 봉사자들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원장님을 엄마라 부르듯이 수많은 이모, 삼촌들이 곁은 지켜주며 채워주셨기에 차려낼 수 있는 밥상이었노라고.
두 청년의 맑은 눈동자와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동생들에 대한 바램들을 나누며 시간이 모자라 다음을 기약을 했다. 여기서 주워 가는 작은 이삭으로 나는 또 다른 이삭을 낳을 것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던 묵묵히 도우며 나누는 이모들의 그늘 속에 잠시 땀 훔치며 한숨 돌린다. 이제 곧 가을이 오고 추수가 끝나면 이삭줍기하는 아낙의 손길도 바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