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집'에서 이삭줍기를 하다
'이삭의 집'에서 이삭줍기를 하다
  • 김순희
  • 승인 2019.08.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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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연합뉴스=김순희 기자) 2019년 어느 여름날 가랑비와 궂은비가 번갈아 내리던 날 '이삭의 집' 문을 두드렸다. 들어서기 전부터 풍기는 기름 냄새와 구수한 멸치장국 냄새가 주영숙 원장님의 환한 미소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반겨준다.

'이삭의 집'에서 한가로운 식사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사진출처=영남연합뉴스DB)
'이삭의 집'에서 한가로운 식사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사진출처=영남연합뉴스DB)

이곳은 1996년 6월 금련산 자락 아래에 자리를 잡아 가정해체, 방임, 빈곤, 유기 등으로 가정해체를 경험한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껴안고 자라며 치유하는 보금자리이다.

숱한 추억과 사랑, 아픔과 성장을 번갈아 고향이 된 이곳에 반가운 가족들의 방문소식이 들려왔다. 원장님의 든든한 아들 이기훈씨와 강기훈씨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이 빨라졌다. 

역시나 엄마 닮아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 둘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직장생활로 지쳐 꿀 같은 여름휴가를 멋지게 보낼 계획에 바쁠 20대 후반 청년이 선택한 휴가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밥이 먹고 싶었다고 그냥 엄마가 해 주는 밥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노을이 드리워진 저녁 집집마다 연기 피어오르며 골목길 헤집어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엄마의 높은 목소리 그리고 푸짐한 집 밥.

소박하기 그지없는 국수라는 메뉴에 담긴 정성을 보고 필자는 주부로서 반성을 해 본다. 고명 켜켜이 쌓아진 도자기 그릇에 담겨진 국수와 고소한 향이 가득했던 각종 튀김을 보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님 온다고 특별한 거냐며 너스레를 떨던 필자는 이곳을 떠나 자립한 지 한참이나 지난 청년들을 중력처럼 끌어당긴 이유는 바로 집 밥, 고향이었다.

요즘은 ‘힐링 푸드‘라는 단어가 꽤나 인상적이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그 만큼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과 철학, 추억 그에 따른 행복감이 치유의 기능까지 있기 때문이리라.

원장님은 설립초기에는 정부 지원 없이 기초생활수급비와 순수후원금으로 이곳을 꾸려왔다. 이 집의 가훈은 ‘역지사지’와 ‘양대로’인데 ‘양대로 해보라, 양대로 먹어라’이다. 무엇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양대로 해 보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안정적인 상태로 이끌고 싶은 독특한 치유방법이라고 알려주셨다.  

필자 역시 이곳의 푸짐한 식단과  정성 가득함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국수 한 그릇에 담긴 훈훈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싶다.

서울로 올라 갈 아들이 주문한 음식 고추장볶음 만들 생각에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시며 내내 싱글벙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는다.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여러 봉사자들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원장님을 엄마라 부르듯이 수많은 이모, 삼촌들이 곁은 지켜주며 채워주셨기에 차려낼 수 있는 밥상이었노라고.

두 청년의 맑은 눈동자와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동생들에 대한 바램들을 나누며 시간이 모자라 다음을 기약을 했다. 여기서 주워 가는 작은 이삭으로 나는 또 다른 이삭을 낳을 것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던 묵묵히 도우며 나누는 이모들의 그늘 속에 잠시 땀 훔치며 한숨 돌린다. 이제 곧 가을이 오고 추수가 끝나면 이삭줍기하는 아낙의 손길도 바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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