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화상 自敍像' 윤기선
[수필] '자화상 自敍像' 윤기선
  • 김상출
  • 승인 2019.09.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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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전체), 좌측하단(윤기선)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전체), 좌측하단(윤기선)

현대과학이 발달한 오늘 날에도 핏줄 이음은 신비에 쌓여 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신장이 187cm 이셨으니 훤칠한 키에 살결도 곱고 뚜렷한 쌍꺼풀에 갈색 머리카락 탓에 사람들은 “미국사람”이라고 했다. 미국사람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외모가 서양인과 흡사하여 6.25때 의정부의 미군부대에서 미군 복을 착용하시니 미군들조차 분간을 못했다고, 내가 그런 부친을 닮았다면 요즘말로 쭈쭈, 빵빵 각선미가 좋았을 것을 그러나 나는 애석 하게도 키가 작은 외가 쪽을 닮았다. 

짧은 목에 머리 숱이 많아 한 달에 한 번씩 머리카락을 자른다. 만약 시기를 늦추면 꼴망태 터벅머리 선머슴의 헤어스타일이 된다. 심한 짱구지만 머리결로 살짝 가리니 숨어 있는 암벽등반 코스를 남들은 모른다. 인물화 그리는 솜씨라도 있다면 위장僞裝이라도 할 텐데 화장하는 솜씨마저 없어 위장도 못한다. 

일자 눈썹은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눈썹 아래 있는 눈꺼풀은 지방 비축을 많이 하더니 나이가 들자  눈꺼풀이 아래로 쳐졌다. 높은 건물의 간판이라도 보려면 눈꺼풀을 손으로 들어 올려주어야 한다. 젊어서는 깨알 같은 글자를 밤을 새워가며 읽어도 좌우 시력1.5이던 밝기가 지금은 안경을 벗으면 물체가 두 서 너 개로 겹쳐 보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안구 건조 증까지 생겼다고 하였더니 남동생이 품질보증기간이 이미 지나갔다는 농담을 했다. 심각한 문제는 중앙의 코다. 이 부분은 외가는 무관하다. 나는 우리 할머니를 닮은 것이다. 

관리만 잘했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을. 못생긴 중앙부처의 수난 시대가 있었다. 아파트 쓰레기통 뚜껑에 코가 부딪힌 것이다. 쓰레기 무게에 피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뚜껑에 날벼락을 맞았다. 가뜩이나 못생긴 구역인데 중앙부분이 날아 간줄 알았다. 만져보니 끈적끈적한 액체와 함께 만져지는 것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포기한 곳이니 못생겼다고 새삼 왈가왈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렇다고 아예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을 수 없다. 가출 해버리면 찾는 비용 또한 많을 것이니 약이나 발라주면서 살살 어루만져 숨이나 쉴 수 있도록 달래어 준다. 얼굴 중에 입술은 윤곽이 또렷하여 믿었는데. 배신을 당했다. 깻잎, 상추 쌈 한 입이라도 할라치면 입가에 주름치마를 만드는 그 모양이 가관이다. 통통하던 두 뺨은 이미 탄력을 잃고 풀이 죽어 쳐졌다. 입가의 주름과 합치자 영락없는 할머니다. 얼굴 모양새가 이러하니 목은 무슨 기운으로 뻣뻣할까 얼굴 받쳐주는 목에 주름 목걸이가 두 겹 세 겹이고 딱 벌어진 어깨에 매달린 팔 아래 손등은 마치 자라 등 같이 두껍다. 

결혼반지 맞출 때 가능하면 총각에게 손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을 숨겼다. 총각 손이 나보다 고왔으므로. 그랬더니 중매한 사람에게 가서 “처녀 손에 이상이 있는지 자꾸 손을 숨기더라고 하더란다.” 지금은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는 않은 손이다. 약수 물 받아 마실 때 바가지가 없으면 손으로 받아도 물 한방을 새어 나가지 않으니 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가. 

신체의 중부지방에 해당하는 허리와 가슴의 경계선이 허물어지자 경계 구역이 없는 관계로 지역구 다툼이 치열하다. 가슴살이 옆구리까지 쳐내려와 자리를 잡자 힘없는 뱃살은 어디로 갈지 방향 감각을 잃고 걸음을 걸으면 출렁거린다. 이런 형국이니 치마를 걸친들 뒤태가 날까 바지를 입은들 모양 날까.

신체의 곳곳에 노후가 역력하여 재건축 수리가 불가피한 곳이 해가 거듭할 수록 늘어 나고 친한 이와 헤어질 때 손이라도 흔들면 천사의 날개처럼 흔들리는 양팔의 살 물결, 오리 궁둥이에 무 다리 마당발은 부산역 광장만하여 오래 걸으면 발목이 아프다. 이와 같이 부조화不調和의 외모지만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을 해본 일은 없다. 체형은 부모를 닮지만 부모님도 어쩔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이다. 

살면서 잘못된 습관과 노후로 인하여 망가진 것이라  관리 잘못하였으니 오히려 부모님께 죄송하다. 동서고금에 늙음을 막고 영원히 살았다는 애기는 듣지 못했다. “천하일색”인 양귀비도 지수화풍地水火風 되었다. 잘난 사람도 한 세상 못난 사람도 한 세상이다. 이왕이면 이목구비가 반듯하다면야 보기에도 좋겠지만  불가항력이니 마음이나 잘 다스려 남은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기로 했다.

▶윤기선 작가 프로필
-신라대학교 대학원 한국어문학과 석사 졸업
-등단:『창조문학』, 2006. 
-수필집: 『그러나 그곳에 가면 문학이 있다』,『머물고 싶은순간』
-국제신문 넉픽션 우수상(1999)
-제16회 해양문학상 수상
-부산시의회의장상
-한국문인협회회원,부산문인협회감사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이사
-부산수필협회이사
-영호남문협 선임부회장겸 사무국장
-불교문협부회장
-재부밀양문인협회회원
-(사)부산여성문학인협회, 부회장, 재무국장(역) 
-부산시여성문화회관 생활한자강사(전) 
-다문화이주여성 한국어 강사(전)
-초등학교 다문화자녀 한국어 강사(전)
-(주)드림웰씨앤에스대표이사

(영남연합뉴스=김상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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