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한국 근·현대사 중요한 사건···뜻 뭐길래?
'아관파천' 한국 근·현대사 중요한 사건···뜻 뭐길래?
  • 천하정
  • 승인 2019.09.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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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사태를 일컫는 아관파천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사진출처=구글이미지)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사태를 일컫는 아관파천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사진출처=구글이미지)

(영남연합뉴스=천하정 기자) 한국 근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 화제다.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의 아관은 러시아를 한문으로 아라사라고 불렀기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며 '아라사 공관'을 줄여서 아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관파천의 파천은 임금이 피란을 가는것을 뜻한다.

당시 고종이 신뢰하던 관리였던 이범진·이완용 등 친러파 세력은 친위대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한 틈을 이용, 자신들의 세력만회와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고종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협의하여 보다 안전한 러시아로 아관파천 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비록 궁은 떠나있었지만 나랏일을 보았고 그중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왕비 살해 사건에 가담했던 친일파 대신들인 김홍집유길준 등을 체포해 처형한 일이었다.

김홍집은 청일전쟁과 갑오경장, 동학 봉기와 아관파천 등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네 번이나 총리대신직을 맡아 국정을 총괄했던 정상급의 개혁 관료였지만,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직후 고종의 밀명에 따라 정식 재판 없이 경무청 순사에 의해 격살된 뒤 군중들로부터 시신이 짓이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한편, 고종이 아관파천을 한 것은 좋은 작용만 한것이 아니었다. 당시 러시아는 고종을 보호하고 있다는것을 핑계삼아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의 삼림 채벌권을 얻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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