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신앙인의 눈(죄란 무엇인가요?)' 정만석
[수필] '신앙인의 눈(죄란 무엇인가요?)' 정만석
  • 김상출
  • 승인 2019.10.1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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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전체), 좌측하단(정만석)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전체), 좌측하단(정만석)

죄란 무엇인가? 법학을 전공하고, 신학(가톨릭)을 공부하며 살고 있는 사람으로 한번은 따져보고 싶다.

“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 저 하늘이 더 파래지고 과수밭 열매가 절로 익는다.” 초등학교 시절 동무들과 한 목소리로 부르던 동요가 입안에서 맴도는 요즘이다. 선생님 풍금소리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앞산 산자락 언덕에는 하얀 분홍으로 물들이든 봉숭아들은 이제 다 스러지고, 진노랑 금계국 꽃이 가녀린 줄기 끝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추억이 새롭다. 여름방학 때 대자리 깔고 누워 온종일 ‘세계 명작 ’ 고전소설들을 읽던 고등학교 시절도 그립다.

요즘 아이들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며 도스도에스키의 ‘죄와 벌’을 열심히 읽고 있을까. ‘죄와 벌’의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이다. 그는 젊은 시기에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사람을 등쳐먹는 ‘벌레’인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건 죄가 아니라 정의 실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사람을 죽이고 난 뒤에는 엄청난 공포와 자책감에 빠진다. 그러다가 마음 씨 착한 쏘냐라는 창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사랑에 감화돼 벌레 같은 노파도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임을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회심을 하고, 유형流刑을 간 시베리아의 차가운 대지에 입을 맞추며 진심으로 제 죄를 자복해 큰 소리로 외친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요즘 뉴스에 전 남편을 죽이고 잔인하게 시체를 나눠 여기저기 버린 30대 여자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재혼 생활이 방해가 될까봐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다는 것도 그렇고, 제 행동에 별 죄책감 없이 보이는 것도 그렇다. 한편 그를 빨리 사형시키라는 국민청원도 20만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에도 마음 편하지 않다. ‘벌레’를 처단한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정말 인간도 아닌’ 저 여자를 빨리 처형하는 게 정의를 실현하는 걸까.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아니 그냥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위 법률이 여기에 위배하면 위헌 무효가 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착한 사람만 존엄한 게 아니라, ‘좌와 벌’의 벌레 같은 노파도, 그를 죽인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리고 회개를 모를 것 같은 저 잔인한 살인범 30대 여자도 다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고 하는 거다. 종교의 스승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덕의 봉숭아며 하늘을 나는 새 그리고 강이며 산이 모두모두 다 일체요 형제자매라 가르친다. 이러한 헌법과 종교의 가르침 안에서는 아무리 살인범이라도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되고 매일매일 소, 돼지, 닭이며 물고기를 죽여 먹이로 삼는 것도 죄에 해당되는 일이다.

힌두교 경전<바가바드 기타>의 죄에 대한 대목을 인도의 철학자이자 대통령을 지낸 라다크리슈난은 이리 해설한다. “ 죄란 그저 계율이나 율법을 범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개체들의 유한성’, ‘무지’그리고 자신의 자아가 다른 것들로부터 독립돼 있다고 여기는 확신이 바로 죄다”. 개체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개체들에 대항해서 자신을 주장해야만 살아 갈 수 있으니 이 유한성이 죄이다. 그런데 곰곰 따져 보면 이 개체는 생존 자체가 다른 개체들과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걸 모르고 저만 저라고 주장하니 무지와 자기중심성이 죄라는 거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 하셨습니다. “ 이세상은 본래 아름답고 여전히 하느님의 귀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폭력, 분열, 충돌 그리고 전쟁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개체인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없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운명이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절제를 할 일이다. 우리가 사회를 지키기 위해 살인범을 처벌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 그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그만두고 대체형벌을 찾을 일이다. 

그렇다. 우리는 죽었다 깨도 유한성이란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기주의라는 죄에서는 한번 벗어나 보겠다고 발버둥 쳐야 하지 않겠는가?      

▶정만석 작가 프로필                                                             
-출생 : 경남 창원, 법학석사, 한국전력 정년퇴임
-계간 부산청옥문학 수필등단 <2015 봄호>시 등단<2016 겨울호>
-부산영호남문인협회, 부산청옥문학협회, 천성문인협회 부회장 겸 편집위원
-부산광역시문인협회, 해운대문인협회 회원, 부산영호남 문학상 작품상 (2018)   

(영남연합뉴스=김상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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