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도굴 흔적 없는 무덤 일반에게 공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도굴 흔적 없는 무덤 일반에게 공개
  • 김용무
  • 승인 2019.11.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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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발굴현장 63호 분의 봉토 축조 모습(사진=창녕군청 제공)

(영남연합뉴스=김용무 기자) 창녕군은 문화재청 국립 가야 문화재연구소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Ⅱ 군 39호 분과 주변 고분’의 발굴조사 성과와 도굴 흔적 없이 온전히 발견된 63호 분 매장주체부의 뚜껑돌을 들어 올리는 개방 모습을 오는 28일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내 미 정비지역(목마 산성의 남서편 구릉 부분)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를 추진하고 있는 국립 가야 문화재연구소는 2014~2015년의 조사에서는 5세기 중반 경의 봉토분(封土墳) 9기, 돌덧널무덤(석곽묘) 15기 등 총 24기의 고분을 조사해 벽에 나무 기둥을 세워 축조하는 방식, 봉토가 서로 가까이 축조되는 연접 방식 등을 확인했다. 2016년부터는 5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군의 동쪽 제일 상단부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으며 대형 봉토분인 39호 분(지름 27.5m)을 중심으로, 63호 분(봉토 지름 21m)과 소형분(봉토 지름 약 8m)인 38호 분, 62호 분의 봉토분 4기를 확인했다. 

이 중 63호 분은 과거에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나중에 축조된 39호 분 봉토에 가려져 있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덤 위에는 길이 2m의 편평한 뚜껑돌 7매가 얹혀있고 점질토로 밀봉된 상태였으며 매장주체부의 내부에는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다. 다수의 토기들이 보이는 상태로 추가적인 유물도 기대되며 봉토 표면 등에 점토 덩어리를 바른 흔적이 온전히 남아있고 호석이 노출된 모습을 보아 비화가야인의 장송 의례와 고분 축조기술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39호 분은 약 1.5m 길이의 큰 돌을 세우거나(양 장벽과 남단 벽), 눕혀서(북단 벽) 매장주체부의 네 벽을 만들었는데 유사한 구조가 성주 성산동 고분군 등 대구·경북지역과 일본 나가노의 키타혼죠(北本城) 고분 등 나가노, 후쿠오카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어 당시 비화가야와 주변국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62호 분에는 양쪽에 잔이 달린 토기와 6개의 잔이 달린 등잔형 토기, 주전자형 토기와 같이 특이한 모양의 토기가 발견됐다. 이러한 상형토기는 주로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창녕에서는 처음 출토됐다. 큰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의 토기를 위아래로 포개거나 열을 지어 놓는 등 다양한 매납 방식도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 의례, 출토유물 등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국정과제인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야 문화의 실체 규명을 위해 기초연구, 발굴조사, 유적 정비, 문화재 지정과 세계유산 등재 등 기반 조성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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