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시의 여행을 통한 소망의식 승화
[시평] 시의 여행을 통한 소망의식 승화
  • 김상출
  • 승인 2019.11.29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권명해 시인의 시적 세계는 현실로 향하는 시선으로부터 비롯된다. 현실의 장면 하나하나가 언어이며 시간의 재생이다. 이러한 순환으로 경험하는 시세계를 소망의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런 그의 시적 세계를 박미정 시인·평론가의 눈으로 읊어 본다.]

당신을 떠나
1박이 필요해



시심詩心이 필요해?

콩깍지로 만나  
진행 중

콩깍지가 뒤에다 꽂는 
전송의 한마디가 짠하게 울리는 길 떠남

버스에 오르자마자 
문학기행의 소고小鼓로 쓰고자 
물음표를 북채 삼았다

마음의 행방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북소리는 따라가며
두드리는 시심詩心

통보한 
1박의 외박이 필요해

                           -「1박이 필요해」전문

이 시편은 현장의식이 리얼하게 표출되었다. 특히 1연과 2연에서 보인 퉁명스러움이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대화의 짧은 뉘앙스는 긴장을 연출한다.

그 진술은 미화美化가 아니기에 더욱 그 의미성이 관심을 끈다. “왜/또”에서 생략된 물음표는 “시심詩心이 필요해?”에서 참을성을 토로한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고 해도 간결한 한마디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박이라는 외박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은 시심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모호한 화술이다. 화술이 배제된 진실의 승화가 이루어진 시라고 하겠다.  

고집하면
더 슬퍼질 뿐인 주장의 엇갈림
둘 다
들어주자는 식으로
끝낸 찝찝함을 숨기고
해탈의 가면을 쓰고 있으나
차라리 체념이다
마주 보고 있으니
서로가 거울이 되어
치미는 화禍를 
도랑 파고 숨겨 둘 수 없다
둘 다 

백기의 언쟁에 진정한 해탈은
히죽이는 웃음이다

                                     -「해프닝」전문

「해프닝」은 낭만성이 짙다. 시적 화자와 대상은 서로가 자아와 비자아의 행동이 아니라 구별을 해체한다. 처음부터 ‘나’와 ‘너’라는 관계가 아니라 ‘둘’로 표현되어 일반적인 단순성이 아니다. 욕망을 욕망으로 주체하지 못하는 주체의 결핍으로 거울 단계에서 이상적인 자아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다가 마음에 흡족한 듯이 자꾸 웃는 웃음을 지적하여 뛰어넘는다. 타자와 세계를 동일시함으로써 충족된 욕망은 낭만적 서정시의 상상력을 구현하게 된다. 

「청산도의 봄」을 통해 단절보다 새로운 국면으로 자아 세계를 환치하며 시인이 희구하는 소망의식을 환시시키고 있다.

봄 익은 햇살이 아담한 섬에 올라와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있으니, 소리꾼 추임새를 객지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즐기는지 표정은 평화롭고 입술은 웃기만 할 뿐, 봄 천지다.

돌담길의 민낯은 언제 보아도 다정하여 예 정취에 이르게 하는데 아이비의 파란 손짓이 가담한 골목마다 여행객의 수다가 다정하다.

서편제의 영상을 그대로 펼쳐내며, 그때가 오늘이듯 돌아가는 사잇길마다 장단 소리와 맞장구치는 봄빛은 찬란하여 지난 어둠의 그림자는 지우고 어여쁜 무늬를 새기고 있는 청산도, 봄은 봄이다.
                                             -「청산도의 봄」전문

다음 시편은 언어의 병치를 통해 시의 구조적 질서를 이행하고 있다. 시의 언어는 불가시적인 미지의 세계라 할지라도 피상적인 채로 남겨 두지 않고 시인의 상상력을 동반한다. 

커피 볶는 냄새가 난다
프리지어가 덩달아 향기를 볶는다
도시인의 고독을 커피 속에 붓는다
창밖의 봄
햇살의 레이저로 뚫고 들어오는 
어설픈 기지개가 예쁘다
커피 향기가
겨울의 지느러미가 느리게 움직이는 
유리창을 깨기 전에
뽀얀 입김을 바르고
커피나무 아라비카를 들고 나온다
                                 -「커피나무 한 그루」전문

이 시는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곁들인다. 시인의 시적 감각이 새로운 인상으로 부상한다. “유리창을 깨”는 행위는 시간의 소멸 지점이다. 그러한 예비 된 시간이 직전에 “뽀얀 입김을 바르고”는 새로운 시공時空의 생명력이 잉태되는 순간이며, 새로운 시간이 충적充積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존재성이 투영된 매개체로 볼 수 있는 ‘커피나무’의 표상은 생명의 본질과 관련되며 새로운 존재의미를 획득한다. 시적 화자가 “들고 나”오는 것에서 소도구가 아닌 생명의 이미지로 존재성이 이입된다. 동시에 그것들의 생성과정을 입체적으로 연상시킨다. 

이상과 같이 권명해는 시의 여행을 감각적 언어와 함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정신세계로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철저한 방법적 절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의 여행은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대상만이 주체가 아니다. 현실과 자연 사물의 형상화 하나하나가 언어의 결합 속에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시인의 지적 세계는 언제나 깨어 있음을 감지한다. 

시의 여행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소망의식은 진정한 가치관을 통해 획득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시인의 시적 세계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박미정 시인의 프로필 사진(사진출처=영남연합뉴스DB)
박미정 시인의 프로필 사진(사진출처=영남연합뉴스DB)

 

 

 

 

 

 

 

 

 

 

▶프로필
-박미정 시인 ․ 수필가 ․ 평론가
-인제대학교, 가야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신라대학교평생교육원 문예창작교수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회장
-(사)부산시인협회 부이사장
-부산영호남문학협회 주간 및 고문
-한국현대작가연대 부이사장
-한국창작가곡협회 부회장
-사상문화예술인협회 부회장
-한국바다문학회 부회장
-은가람문학회 고문

(영남연합뉴스=김상출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