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향의 노래' 김복녀
[수필] '고향의 노래' 김복녀
  • 김상출
  • 승인 2020.11.1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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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둠과 함께 끙끙 앓고 있었다
수십 년간 이루지 못하는 잠, 불면증이라고 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떠오르지도 않은 깜깜한 암흑의 세계에 혼자 뚝 떨어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늦은 시간이었다. 울리는 핸드폰이 그리 반가울 줄이야. "야, 너 잠 안 자는 줄 알고 오늘은 용기를 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불러 줄게 이 노래 듣고 오늘은 잘 자야 한다"
수십 년 불면증으로 잠 못 드는 나를 위한 친구의 노래
김재호 시 이수인 곡의 '고향의 노래'다
'국화꽃 져버린 가을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가곡이다. 어릴 적 오가는 학교 길에 그녀와 자주 부르던 노래다.
지금은 호흡도 딸리고 박자 고음 내는 것이 어려워 가곡을 잘 부르진 않지만 학창 시절엔 늘 우리 가곡만 부르고 다녔다.
선생님의 칭찬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보이지 않는 핸드폰 속에서의 노래지만 최선을 다해 부르는 노래가 감동을 만드는 밤, 몇십 년 전 어린 시절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눈앞에 와 있는 그리움으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이셨던 H 선생님 
수학 선생님이셨고 남자분이셨다. 학생들에겐 회초리를 아끼지 않으시는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했는데 국화꽃을 유난하게 좋아하셨다.
여자중학교의 학생들 전체는 학기 초에 빈 화분을 하나씩 가져와 작은 국화묘를 심었다. 이름을 써 붙이고 정성스럽게 보살피며 키우게 되었다. 곳곳이 국화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름 방학 땐 하루씩 당번을 정해 물을 주러 학교에 가곤 했다. 사랑과 정성으로 잘 자란 국화 화분, 가을이 되면 교문에서 이어지는 양쪽 화단과 교정에는 수십 만 송이의 국화꽃이 만발하였고 국화꽃 향기로 가득했다.
송이가 작은 국화에서 대국까지
국화분은 학교를 점령했고 복도에도  국화꽃으로 미화를 해 놓았다 각 교실 창문가에도 국화분이 차지 했다 한 다발의 국화꽃을 각자의 교실에 꽂기도 했는데 이 작은 가을녘의 꽃들이 교실 안을 환하게 분위기를 바꿔주었다. 국화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칠 때 꿈꾸는 잠깐의 오수시간이 행복 했다

국화꽃은 가을의 뜨락을 한층 더 깊은 맛으로 멋지고 우아하게 만들어 준다. 가을과 함께 꽃을 피우는데 화려하지 않지만 찬서리가 온몸에 내릴 때까지 가을의 길목을 고즈넉한 모습으로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해마다 왜 국화꽃을 고집하셨을까?"
국화꽃은 꽃도 향기도 오래간다.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겨울을 맞이하기 전 가을 뜨락을 오래도록 지키는 꽃이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곱상하지도 그리 값어치 나가는 꽃은 아니었으나
인생의 마지막까지도 굳게, 곧게 지키시고픈 마음이 아니셨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국화꽃과 향기는, 내 여학교 시절의 생기 발랄한 모습과 선생님의 향취로 남아있다 가을이면 친구들과 늘 공유하는 추억 속 줄거리이기도 하다
국화꽃, 특히 들녘에 피어 있는 들국화를 좋아하는 나는 국화꽃을 닮고 싶었다.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꽃을 피우고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긍정의 힘으로 내 삶을 꾸려 나가는 것, 인생의 마지막이 올 때까지 진솔함으로 꽃피우기와 향기를 멈추지 않는, 열정이 식지 않는 삶을 살고 실천하기를 소원했다.

이 밤 나를 위해 고향의 노래를 열과 성의를 다해 불러주는 친구 역시 국화꽃처럼 은은한 향기를 품은 사람 일 것이다. 언제나 자신보다 날 먼저 챙겨주는 멋진 친구와의 우정은 반세기 넘는 동안 변하지도 시들지도 늙지도 않는 국화꽃이요 향기리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한 송이 들국화 꽃처럼 살아온 지난날 모두가 날 즐겁게 해주는 사랑이요 꽃이고 향기니 죽마고우 친구로 인한 옛 추억으로의 여행을 잠시 하고 돌아온 가을 뜨락이 국화꽃과 향으로 더욱 멋진 9월의 날이다. 무서운 분이셨지만 국화꽃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셨던  H 선생님이 함께 생각나는 밤, 국화꽃의 향기로 가을은 더욱 빛난다
"아 가을 가을이여"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전체), 좌측하단(김복녀)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전체), 좌측하단(김복녀)

▶프로필
-충북 옥천 출생
-시의전당 문인협회 정회원
-'문학세계'詩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세계 문인회 정회원
-시인의 바다 문인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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