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중) 아버지의 일기 (8,9일차)
(연재중) 아버지의 일기 (8,9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09.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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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8)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1월 13일(一月十三日) 토(土) 맑음
희망希望에 넘치는 해님의 광선光線이 대지大地에 비취자 온갖 생명生命이 있는 생물生物은 모두 움직이고 있다.
앞 학교學校에서 방위대원防衛隊員은 합숙合宿하고 있다.
새벽에 잠을 깬 그들은 오늘의 ‘삶의 길’을 개척開拓하기 위하여 활동活動하고 있다.
날은 맑게 개이고 따뜻한 날씨다.
앞 길가에는 피란민이 봇짐을 싸서 지고, 어린아이를 업고, 나라 없는 백성百姓처럼 따뜻한 고향故鄕을 떠나 오직 낯설은 타향他鄕에서, 추움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여 근심과 눈물에 싸인 얼굴로 지나가고 있다.
또한 앞 학교學校에서 방위대원防衛隊員들 역시 따뜻하고 뜨거운 밥은 버리고 춥고 추운 교실敎室 속에서 오늘이라도, *후송령後送令 오기를 대기待期하고 있는 대한大韓의 청년들! 그들에게 무슨 죄와 무슨 잘못이 있는가?
오늘의 일과日課도 어느덧 지나 벌써 서산西山에는 처녀의 눈썹 같은 반半달이 솟아 대지大地의 눈에 덮인 산천山川을 비취고 있다.
나는 석반을 마치고 달빛이 어리는 ‘어머니’ 무덤을 멀리서 보았다.
그 역시 달빛은 비취고 눈은 쌓여 더욱더 나의 마음을 외롭게 만들어 눈물과 울음이 저절로 하염없이 나오다.
고故로 나는 참지 못하여 ‘어머님’ 무덤에 가려고 한 걸음 두 걸음 옮겨 보았으나, 밤은 깊어 생전生前에 잘못한 죄는 울어도 소용없고 슬퍼하여 소용없다는 듯이, 찬바람이 나의 살을 에는 듯 때려와 권영달 댁에 들어가 몹시 울고 울었다.
높은 하늘에는 비단 같은 고운 반달을 옹호하는 작은 별들이 점점 이 밤을 점령하고 있다.
‘어머니’! ‘어머니’! 불효자不孝子는 웁니다.
하늘에서 내린 차고 찬 함박눈은 ‘어머님’ 무덤을 덮었습니다.
생전生前에 춥다하신 ‘어머님’ 말씀, 지금에 잊지 않고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어머님’ 별세別世하신 지 40일 지내어 이 몸 ‘어머님’ 따르지 못하고 아버지 슬하膝下에 평안平安히 있습니다.
사랑에 넘치는 ‘어머니’ 얼굴, 따뜻하게 귀엽게 말씀하시는 ‘어머님’ 마음, 그 사랑 그 영광을 받은 이 몸은 쓸쓸한 인생人生 벌판에서 누구를 믿으오리까? 지금도 떠오르는 영원永遠한 얼굴, ‘어머니’ 살아 있는 영靈을 눈물진 가슴에 모시었습니다.
**따뜻한 이바지, 고운 시중 한 번도 못 받으신 외로웠던 ‘어머니’ 눈물 지고 이신 그대로 세상 간世上間의 ***닻이었습니다.
근심, 고생, 슬픔을 고이 더러 밟고 가신 ‘어머니’ 저 세상世上 밝은 집, 신神의 창窓 안에서 내 ‘어머니’ 거기서 영복永福에 잠기오소서….
슬픔과 뼈아픔을 누구께 호소하리오!
****다만 지 슬픔과 뼈아픔은 이 몸뿐이오.
오늘도 울음과 고독 속에서 ‘어머니’ 생각을 하여 보았소.
세상世上 버리고 가신 ‘어머니’ 생각 타 무엇하리!
한숨 지누나!

*후방으로 보내어지다
**‘잔치’의 방언, 혼례 후에 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음식을 정성 들여 마련하여 보내줌
***배를 한 곳에 멈추어 있게 하기 위하여 줄에 매어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갈고리가 달린 기구.
****다만의 옛말.

 

캡처.PNG

 

 
 
 
 
 
 
 
 
 
 
 
 
 
 
 
아버지의 일기 (9)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1월 15일(一月十五日) 월(月) 맑음
*국사봉國寺峯 산마루에 붉은 햇빛이 온 산허리를 비취자, 캄캄하고 어두웠던 밤이 환히 광명천지光明天地로 변變하였다.
요사이 들리어 오는 전과戰果의 소식消息, 날마다 호전好戰으로 진격중進擊中이라는 보도가 들리어 오다.
모두 다 초조한 마음, 일시一時도 참지 못하고 피란避亂 갈 준비에 바쁘던 사람들이 요사이는 조금 안심安心한 마음을 주고 있다.
오늘은 앞 학교學校의 전교생全校生 소집일召集日이다.
동시同時에 교장校長 부임인사赴任人事 및 전근轉勤 또한 부임인사赴任人事를 하다.
밤에는 동무들과 박태식朴泰植 댁에서 재미있게 하룻밤을 지내다.
두류산 양단수를 네 듣고 이제 보니 도화든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나 나는 **엔가 하노라
- ***조식

*국사봉 아래에 국사國寺란 절이 있었다고 하여 국사봉(338m)이라 하였다.(상산명감 尙山明鑑, 1960).
**여기인가.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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