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20)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1월 28일(一月二十八日) 일(日) 맑음
잠을 깨자마자 곧 자동차自動車, 탱크 소리 지나간 날과 같이 요란스럽게 들리어 마을 사람의 ‘심정’을 또 초조하게 만들어주다.
나는 급急히 뒷산에 올라 가본즉, 조금도 보이지는 않으나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어 온다.
10시경에 뒷논에 얼음 타러 갔다.
거기에는 벌써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다.
여기서 김대경金大經의 어리석음으로 물에 빠져 허둥지둥….
낮에는 배창문 선생님과 함께 학교學校에서 놀던 중, 하도 심심하여 *낙화생을 사 먹으려고 하였으나 물건物件이 없어 못 사먹었다.
시각時刻은 일초一秒를 멈추지 않고 흘러서 벌써 방학放學도 14일 남았다.
나는 이 동기 방학冬期放學 40일을 좀 더 ‘유달리’ 한번 모든 것에 연구 공부하여 남에게 뒤지지 않는 인간人間이 되어 보려고, 마음속 굳은 약속이 내란內亂이란 두 글자로 이 자者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하여 벌써 한 달이 흘러가고 말았다.
겉으로는 바보같이 속으로는 붉은 피, 끓는 대한남아大韓男兒 되어 보자.
자기自己가 무엇이라고….
전투기 4기機가 밤하늘에 높이 뜨다.
그들은 누구를 위함인가?
* 땅콩.
아버지의 일기 (21)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1월 29일(一月二十九日) 월(月) 맑음
27일. 서울에 계시는 작은아버지께서 오시다.
모든 식구食口가 무사無事한 몸으로 내려오시었다.
아버지와 나는 기다리던 때이라 매우 반가워 마지않았다.
오늘은 생물生物 숙제宿題를 하려고 결심決心하였다.
연然이나 잉크, 학습장學習帳이 없어 4, 5, 6권의 책을 읽으려고 학교學校로 갔으나 손님으로 인因하여 그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요사이는 점점 전과戰果가 호전好戰으로 진격중進擊中인 고故로 모두 마을 사람들은 ‘설’ 준비에 한창이다.
오후午後에는 중식을 먹고 학교學校로 가서 배창문 선생님과 함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어제 오늘 아무 편리便利 없는 금액金額 칠백환을 썼다.
아무것도 산 것 없어 칠백환이란 ‘돈’을 쓴 것은 도저히 아버지에게 대對할 면목이 없었다.
요사이 떠돌아다니는 난언亂言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에 믿지 마라! 일본이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는 아무 근거 없는 소리가 이 속계에 떠돌아다니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