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22,23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22,23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09.18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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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22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1월 30일(一月三十日) 화(火) 맑음

돌보아 주신 누님, 못난 동생을 위하여 특特히 귀엽게 키우시며 가르쳐 주신 누님, 몹쓸 운명運命으로 매형妹兄은 악독惡毒한 제국시대帝國時代에 저 멀리 타국他國땅 하퇴*로 징병徵兵 가시고, 오직 누님 홀로 외롭게 쓸쓸히 이 세상世上을 살아 계시다가 마침내 아! 아! 몹쓸 병, 무서운 폐병肺病, 난병으로….

호화로운 영광 조금도 없었던 누님은 23세歲를 일기一記로 아까운 청춘靑春을 그만 영원永遠한 황천黃泉길, 천단天壇 ** 의 길로 영면永眠히 잠드시었다.

그 동안 꽃 피고 잎 피는 봄, 홍엽紅葉을 자랑하던 그 가을 추운 겨울로 어느덧 3년을 지나고 말았다.

이 동안 한때 교원채용시험敎員採用試驗에 합격合格이란 두 글자로 이자者의 마음을 반갑게 기쁘게 한 때도 있었으며, 또한 ◯◯◯◯◯에 불합격不合格한 남아男兒의 과거過去길로 이 가슴을 애태운 때도 있었으며 많은 정신적 고통을 준 때도 있었다. 연然이나 조금씩 우리의 가정형편家庭形便이 나아가는 이때에 말 못할 명命, ‘어머님’ 생명生命 음력 10월 23일 저녁노을과 함께 영원永遠히 떠오르는 ‘어머님’ 얼굴, 사랑에 넘치던 ‘어머님’ 말씀 저 세상世上 밝은 신神의 창窓 안에 영복永福에 잠기시었다.

하느님도 무심無心하기도 하다. 마치 딸 하나 미숙未熟한 아들, 남매男妹를 두고 조금도 따뜻한 시중 한 번도 못 받으신 ‘어머니’ 영화 안락을 보지 못하신 외로웠던 ‘어머니’ 마지막 불효자不孝子의 얼굴 보지 못하고 나 또한 흰 관념觀念 *** 떠오르는 영원永遠한 ‘어머님’ 얼굴 보지 못하고….

하늘이 높다 해도 3, 4경更에 이슬을 내려주고 북향北向길 멀다 해도 사신使臣이 왕래往來하나 황천黃泉길 얼마나 멀기에 한번 가시면 못오시나!!

지금은 오직 홀로 계시는 아버지 누구에게 뜻 붙이시고 남은 평생平生을 살아 보실까? 붓을 옮기는 이 순간 하염없는 눈물, 뜨거운 눈물이 흘러 이 자者의 가슴을 애태우는 것이다.

오! 하느님이시여! 우리 삶의 길을 개척開拓하여 주소서. 정처 없이 가는 이 자者의 길, 정의正義의 길로 밝혀 주소서….인생행로人生行路는 무상無常의 길….인내忍耐 “견이사의 견급원명見利思義 見急援命”(이로운 것을 보거든 정의正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것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安重根,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

* 만주에 있는 지명.

**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
*** ①생각 ②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하는 일. 관찰觀察 사념함의 뜻.

 

아버지의 일기 23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1월 31일(一月三十一日) 수(水) 맑음

오늘로써 1월도 마지막 날인 동시同時에 방학放學한 지도 막 한 달이 저물어 가는 저녁노을이다. 이 동안 나는 지난 일을 한번 생각하여 볼 때 아무 뚜렷한 일 하나도 한 것 없이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났다.

또다시 오지 못할 귀중한 1개월個月을 무심無心코 허송하였다. 앞으로 남은 10일을 좀 더 유효有效하게 보낼 예정豫定으로 다시금 덮었던 서적書籍을 펴보았다.

‘밤이다.’ 김창원 군이 오라 하기에 가보았다. 거기서 맛좋은 음식飮食을 주기에 많이 먹었다. 생각하였다!!

인생人生이란 꿈과 아울러 빠르고도 빠르다. 특히 자라나는 소년少年들은….반성反省 나는 아직도 의지意志가 약하다.

한번 결심決心한 것은 어디까지든지 한번 이겨내야 할 꿋꿋한 의지意志를 가져야 할 남아男兒의 행실行實이 아닐까?

애기애타愛己愛他(자기를 먼저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라).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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