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26,27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26,27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09.19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의 일기 (26)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3일(二月三日) 토(土) 맑음
앞 학교學校에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여서 훈련연습을 하고 있다. 생물生物 숙제를 한 뒤 이발理髮을 하였다.(3백환) 오후午後에 삼촌三寸이 오시고 또한 피란민 남男 2인, 여女 1인이 우리 집 아랫방에 유숙留宿하다.
귀또리 귀또리 어여쁘다 저 귀또리 어인 귀또리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래 저른 소래 절절히 슬흔 소래 제 혼자 울어 내여 사창 여흰 잠을 살뜰히도 깨오는 제고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무인 동방에 내 뜻 알 리는 저뿐인가 하노라
인지위덕忍之爲德*

<엮은 이 註> *忍之爲德 (인지위덕)
우리 속담에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와 연관된 민담 한 토막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옛날 한 총각이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가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한 노처녀를 만나 그 처녀하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 노처녀가 시집이라고 와보니 집이라고 가난하기 짝이 없어서 발막대기 거칠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방이라는 것이 기운이 세서 일은 곧잘 하지만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서야 쓰겠나 생각한 색시는 남편을 공부시켜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를 시켜 입신양명을 시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안 살림은 내가 맡을 테니 당신은 공부나 하시오.” 하고는 서당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서당에 다니면서, 하늘 천 따지를 배우는데, 한 자를 더 가르치면 앞에 배웠던 글자는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훈장은 할 수 없이 일평생 사는데 꼭 필요한 글자만 가르쳐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인지위덕忍之爲德 “참는 것이 덕이다.”라는 뜻의 네 글자만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어찌나 둔한지 참을 인, 갈 지, 하 위, 큰 덕 하고 한 자 한 자 가르치는데 그만 한 자에 석 달씩 걸려서 1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인지위덕으로 붙여서 가르치고 뜻을 알게 가르치는 데도 1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인지위덕이라는 것을 2년 걸려 배운 셈이죠. 다 배우고 나니까 훈장은 다 배웠으니 그만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서당에서 글을 다 배웠다고 돌아온 사내가 배웠다는 것이 겨우 인지위덕 넉자였으니 아내는 그만 기가 막혔습니다.
이것 가지고는 과거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기에 아내는 더 공부하라 하지 않고 돈이나 벌게 장사나 하라고 돈 몇백 냥을 내주면서 돈이나 벌어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 남편은 돈 벌러 간다고 나가서 장사를 하는데 그 둔한 머리에 장사가 되겠습니까? 돈을 벌기는커녕 밑천까지 다 까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왔는데, 나 돌아왔소 하는데도 반가이 맞을 줄 알았던 아내가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 그때는 여름날이라 방문이 활짝 열려 있길래 방안을 들여다보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내가 웬 사내를 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은 그만 벌컥 화가 나서 속으로 소리를 쳤습니다.
“이것이 내게 돈을 주어 내보내더니 딴 사내를 끌어들여? 에라! 연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그리고는 마루에 있는 큰 다듬잇돌을 번쩍 들어 방으로 들어가서 박살을 내려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뇌리에 서당에서 배운 인지위덕이라는 말이 반짝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인지위덕, 인지위덕 참는 것이 덕이 된다고 했지?’ 그는 들었던 디딤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고 화를 삭이고 있는데 아내가 인기척을 느끼고 낮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셨소 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옆에 자는 사람을 깨우며 말했습니다.
“얘야, 어서 일어나라 형부 오셨다.” 그러자 옆에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나는데 그는 남자가 아니라 처제가 아니었겠습니까? 처제가 모처럼 찾아와서 하도 더우니까 머리를 감고 풀 상투처럼 올리고 쉬느라고 잤는데 얼른 보기에 남자가 자는 것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인지위덕이라는 글을 몰랐더라면 두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지요. 글은 배우고 볼 일이라고나 할까요?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어떠한 경우에도 참고 볼 일인 것 같습니다.

** <현대어 풀이> 귀뚜라미, 저 귀뚜라미, 불쌍하다. 저 귀뚜라미 어찌된 귀뚜라미가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마디마디 슬픈 소리로 저 혼자 울며 다니어 비단 창문(나의 침실) 옅은 잠을 잘도 깨우는구나. 두 어라 제 비록 미물이지만 임 없이 지내는 텅 빈 방에서 나의 뜻을 아는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아버지의 일기 (27)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4일(二月四日) 일(日) 맑음
날은 맑게 개이어 기러기 네 마리 *쌍지어 날아간다.(넓은 하늘에 자유自由를 얻어서….)
요사이 전과戰果의 News, 매우 호전好戰으로 진격 중進擊中이라 오늘도 어린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독서도 못 하여 기계방아 찧는 데 가서 견見하다.
또한 **디딜방아에도 떡방아를 찧기에 서로들 바쁜 걸음으로 동네사람은 ‘설’ 준비를 하다.
연然이나 우리 집에는 잠자코 ‘설’이 다가온다 하나 그리 준비도 하지 않다.(어머님께서 살아 계시었다면 우리도 기쁨에 넘쳐 떡방아를 찧을 것이련만….)
반중 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없을 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 박인로

* 짝지어
** 발로 디디어 곡식을 찧거나 빻게 된 방아. 굵은 나무 한 끝에 공이를 박고 다른 끝을 두 갈래가 나게 하여 발로 디딜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공이 아래에 방아확을 파 놓았다.
*** <조홍시가早紅枾歌> 소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 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 가도 반가워해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를 서러워합니다.
지은이가 이덕형의 집에 찾아갔을 때 홍시紅枾 대접을 받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노 래이다. 즉,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효도를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풍수지 탄風樹之嘆의 한 예가 되는 작품이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본 사 :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공원로 1
  • 법인명 : (주)영남연합신문
  • 제 호 : 영남연합뉴스 / 연합환경뉴스
  • 등록번호 : 부산, 아00283 / 부산, 아00546
  • 등록일 : 2017-06-29
  • 발행일 : 2017-07-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창훈
  • 대표전화 : 051-636-1116
  • 팩 스 : 051-793-0790
  • 발행·편집인 : 대표이사/회장 강대현
  • 영남연합뉴스와 연합환경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영남연합뉴스·연합환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nyh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