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54~56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54~56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10.11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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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54)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3일(三月三日) 토(土) 맑음
방이 싸늘어 우리들 셋은 서로 꼭 웅크리고 잠을 잔 까닭인지 온 뼈마디가 아팠다.
아침을 먹고 서로 배치配置된 곳으로 갔다.
날은 차다.
볼과 귀를 에는 듯한 찬바람이다.
나는 우리가 배치된 곳을 찾느라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찾는 중 마침내 찾았다.
거기는 무슨 교당敎堂이었다.
매우 깨끗하고 알맞은 실내室內이다.
여기서 음악音樂 3시간 하고 또다시 침천정枕泉亭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앞 냇가 물을 건너므로 돌다리를 놓았다.
놓은 후 올라가 본즉 서글프기 짝이 없고 춥기가 짝이 없다.
오히려 교당敎堂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감感이 나다.
이러한 중, 벌써 3시가 넘은 듯싶다.
곧 하숙집으로 와서 집으로 오다. 밤에는 내가 가져온 전등 약을 병희 형에게 갖다 주어 켜본즉 불이 켜졌다.
또, 고모님 계시는 곳에 가보았다.

 

아버지의 일기 (55)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4일(三月四日) 일(日) 맑음
오늘은 일요일.
아침 일찍이 앞 학교學校에서 음정 연습하다.
낮에는 고모님 댁에서 동양사東洋史 독서하다.
밤에는 김태경이가 상주尙州 죽전으로 ‘선’보러 갔다온 데, 대對하여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아버지께서는 선생님들과 놀러 가시어 밤에도 오시지 않았다.
요사이 전과戰果가 매우 호전好戰으로 진격 중進擊中 이라는 소리 들리어오다.
작은아버지 삼촌三寸 어른께서 금 천환을 주시며 학용품學用品에 보태 쓰라 하기에 받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구태여 주시기에 달게 받았다.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 되리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희야 잔만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 **김창업 * <현대어 풀이> 모든 사람이 다 벼슬을 하면 농부 할 사람이 누가 있으며, 의원이 어떤 병이든 다 고치면 북망산 에 무덤이 저렇게 많겠는가? 아이야, 어서 잔 가득 술이나 부어라, 내 뜻대로 살아가리라.
** 김창업(金昌業, 1658~1721) 자는 대유 大有, 호는 노가재老稼齋·석교石郊 아버지 수항과 맏형 창집이 모두 영의정을 지낸 명문에 태어났으나, 그는 벼슬에 뜻이 없어 동교東郊에 노가재를 짓고 전원생활을 즐겼으며, 맏형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와서 ‘연행일기燕行日記’를 지었다. 그림에도 뛰어나 특히 산수·인물을 잘 그렸다.

 

아버지의 일기 (56)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5일(三月五日) 월(月) 맑음
깜짝이 잠을 깨다.
밖은 환히 다 새었다.
나는 깜박 어쩔 줄을 몰랐다.
전前에 비比하면 막 지금 떠나야 할 시간時間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이제서야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는 모양이었다.
슬프다!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그래도 새벽밥을 일찍이 지어 주셨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쌀 4두斗를 얻어 아침밥도 먹지 않고 그냥 바쁜 걸음으로 재촉하였다.
아버지께서도 그 마음인들 오죽하시랴! 아침밥을 먹지 않고 보내는 이 자者를 생각할 때….
고개마다 넘어 본즉, 학생學生 1인도 보이지 않고 해님은 점점 이 자者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주었다.
반갑다!!
부원학교學校 1학년學年은 아무도 보이지 않아 지각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여 구슬땀을 비로소 닦았다.
*침천정枕泉亭 배움터에는 동지同志들이 교실敎室을 잘 만들었다.
오늘은 6시간을 앉아서 마치다.
세 끼를 굶으니 저녁 맛이야 어느 맛좋은 요리에 비比할까? * 선비들의 휴식 공간 ‘침천정枕泉亭’.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만산동 699번지) 임란북천 전 적지 내에 위치한 침천정枕泉亭은 조선시대 1577년(선조10)에 상주목사尙州牧使 정곤수(鄭崑壽, 1538~1602)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蓮堂이라 이름 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 으로 사용하던 관정官亭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4)에 상주목사 한술韓 述이 증건하고 1614년(광해군6) 상주목사 강복성康復誠이 천향정天香亭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숙종 19)에 목사 이항李恒이 연지蓮池를 홍백연당紅白蓮塘으로 고치고, 이향정二香亭이라 하였다.
그 후 일제시대인 1914년 도시계획정비에 따라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방에 뜻있는 선비 여러 명 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沈晥鎭이 침천정枕泉亭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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