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얼마만의 햇살인지… 너무도 반가워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가 보니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잡아 먹을 듯이 덤벼드는 차갑고 거센 바람에 금새 다시 게르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은 몽골 대륙의 약 1/4을 차지하는 고비 사막 중 총 길이 약 180km로 뻗어 있는 홍고르 엘스(Khongoryn Els) 듄을 정복해 보기로 했다. 멀리서는 그저 모래가 쌓여 있는 정도로만 보였으나 막상 앞으로 가 보니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모래 산이었다. 그야말로 땡볕에 사막 등반을 하려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 진다.
너무도 거센 바람으로 인해 홍고르 엘스의 모래가 사방으로 날리고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셔 우리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온 몸을 꽁꽁 싸매며 사막 정복에 나섰다. 홍고르 엘스를 오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보이니 저 곳까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일단은 도전 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계속 푹푹 모래 속으로 빠지는 발에 앞으로 나가 지지도, 올라가 지지도 않고 제자리만 맴도는데다 거친 바람은 우리에게 사막 정복을 쉽게 허락 하지 않았다. 데기는 시범을 보인다며 팔까지 이용해 네 발로 기어 오르듯이 성큼성큼 앞질러 올라 가며 힘들어 하는 우리를 이끌었다. 매번 이 등반을 여행자들과 함께 하며 이끌어야 하는 데기는 얼마나 힘들까… 정말 대단하다.
낑낑 대며 드디어 도달 한 사막의 정상! 힘들었던 등반 길 도중 포기하고 내려 가고 싶기도 했지만 사막 꼭대기에 올라 고비 지역을 내려다 보며 해냈다는 성취감에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과 용기를 얻었다. 기쁜 마음으로 다같이 달리고 구르며 사막을 내려가 시원한 생수 한 잔을 들이키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하다. 이제 온 몸 구석구석에 들어 간 모래를 빼 내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고된 사막 등반에 피곤했는지 푸르공 안의 우리 모두 단잠에 빠져 들었고 어느새 눈을 떠 보니 불타는 절벽(Flaming Cliff)이라는 별칭을 가진 바얀작(Bayanzg)에 도착 했다. 말 그대로 해가 질 때 즈음 비춰지는 붉은 절벽이 절경이며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바얀작으로 들어가는 길은 조금 험했지만 오전에 했던 사막 등반에 비해서는 너무도 편안한 길이었다. 조심조심 한발한발 내딛으며 불타는 절벽의 멋진 모습을 보러 더 가까이 들어갔다.
불타는 듯 이글거리는 느낌은 생각보단 덜했지만 역시나 멋진 지형과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곳을 뒤로하고 오늘의 숙소로 향했다. 데기에게 오늘 지낼 숙소는 어디인지 묻자
“Nowhere yet. We need to find out.” (아직 없어. 지금부터 찾아야지!)
라는 대답에 우리 모두 멍해졌다. 데기는 깔깔 웃으며 오늘의 숙소는 노매딕 헌트(Nomadic Hunt, 유목민 낚기)로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5월 초의 비수기에 여행자 캠프 숙소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인데다 큰 도시가 아니면 일반 숙박업소도 찾기 힘드니 언제나 이곳 저곳의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을 찾아 하루를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거절하면? 이라는 질문에 데기는 집에 큰 문제가 없는 한 몽골인들은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뭐… 데기를 믿어볼 수 밖에 없다. 얼마간 계속 달리던 푸르공은 들판에서 염소와 양을 치고 있는 한 여인에게 다가가 멈추었고 데기가 내려서 우리 상황을 설명하며 숙박을 요청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더니 “She says YES!(허락 했어요)” 라며 밝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녀의 남편은 지금 도시에 나가 내일 오전에 돌아 온다고 수태차를 대접하며 얘기했다. 정말 한 공간 안에 침실, 부엌, 응접실, 그리고 종교적인 성스러운 공간 까지 갖추어 져 있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침대는 손님용이 항시 따로 마련 되어 있고 자리가 모자란 경우 바닥에서도 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들어 일제히 바닥에 지친 몸을 눕혔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느닷없는 손님들의 방문에 신이 났는지 함께 뛰어놀자며 우리 주위를 맴돌며 관심을 보였다. 이에 아이를 좋아하는 다하는 어느새 아이들과 친해져 장난도 치며 잘 놀아주었고 그 사이 우리는 키우고 있는 양과 염소들을 구경하며 너른 들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넓은 들판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과 염소들을 보며 나 역시 마음이 평온해 지는 듯 하다. 오전부터 힘겹게 올랐던 홍고르 엘스 등반과 바얀작도 너무도 멋있고 훌륭했지만 느긋하게 평화로움을 바라보는 이 순간 역시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다. 오늘 몽골은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과 웅장한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몽골 사람들의 따뜻함을 보여 주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된 하루였다.. 피로에 지친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 한 이 유목민 가족의 손길로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험블리 부부의 세계여행!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