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79~83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79~83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10.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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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79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8일(三月二十八日)수(水)흐림
동생들은 잠에 취하여 달게 자는 동안 나는 일기장日記帳에 붓을 옮기었다.
오늘의 하루 일과日課 지나온 자취를 생각하다. 나는 오늘 아침 식사당번食事當番이다.
유달리 일찍이 일어나 ‘장작’을 넣어둔 부엌을 본즉, 나무가 모조리
다 타고 소죽을 끓이지 않은 솥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본교本校에서 조회朝會를 마치고 분교分校로 가서 수업授業을 받았다. 이 세상은 황금시대黃金時代, 누구나 금金이면은 모든 선악善惡을 해 결解決하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지나치게! 저학년低學年에 조금도 차이 없이 대對하였다. 좀 더 복종服從시킬 묘안妙案을 갖자. 옆 방에서는 밤 늦도록 어르신들께서 여러 가지 경험經驗한 이야기를 하시고 계셨다.
하늘에는 작은 아기별들이 구름이 트인 곳마다 뛰어다니며 암흑暗 黑의 속세俗世를 엿보고 있다.


아버지의 일기 80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9일(三月二十九日)목(木)흐림
밝은 아침이다.
동창東窓에는 불그레한 아침 햇빛이 물들어 매우 아름다운 모양의 색채를 띠고 있다.
우리 넷은 모여앉아 여러 가지 농담을 하면서 아침밥을 먹었다.
등교登校하던 중, 온갖 것들이 그 초춘初春을 맞이한 초목草木들, 삼동三冬에 꼼짝 못하였을 모습을 나날이 어린 노란 싹을 틔우며 또한 얼었던 땅, 언덕에는 차츰차츰 풀리어 이제는 여러 곳의 언덕마다 흙이 무너진 것을 보았다.
오늘은 구름이 끼어 매우 추웠다.
5시간에는 수학數學을 하였다.
도저히 어떻게 된 셈인지 이해理解하기 어려웠다.
대다수大多數의 학생學生들도 매우 어려운 생각으로 수업授業을 받고 있다.
하교 시下校時에 책상을 운반하러 갔으나 없어서 하숙집으로 왔다.
석반夕飯을 먹고 귀운 형께서 또한 동생들이 이상異常한 말을 하였다.
어제 나의 뒤에 따라온 여학생女學生 둘이 이 집 길거리 모퉁이에서, 나에 대對한 이야기를 묻고 뒤돌아가며 남 보기에 수상한 태도態度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상異常하다.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하고 나는 한 번 더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일기 81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30일(三月三十日)금(金)맑음
으스름97 달밤 새벽의 광경光景이다.
하늘에는 얼마 있지 않아 이 우주만물宇宙萬物을 낱낱이 비춰주며 보호保護하여 주는 조각달, 들리어 오는 새벽 닭소리에 점점 그 밝은 광채光彩는 사라져, 이제는 완연完然한 동산東山에 웃음 띤 해님과 교대交代한 밝은 아침이다.
누런 언덕 아래서 두 마리의 종달새 일찍이 일어나 앉아 오늘 하루의 일과日課를 이론理論하며, 추운 아침 바람에 ‘깃’을 오므리어 서로들 이야기를 바꾸고 있다.
수업授業을 마친 후, 담임擔任 선생님의 지시指示에 의依하여 남학생男學生 일부一部는 읍邑으로 책상 운반하러 가고, 또 일부一部는 앞 냇가 흐르는 물에 임시臨時로 가마니에 모래를 넣어 다리를 놓았다.


아버지의 일기 82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31일(三月三一日) 토(土)맑음
오늘은 3월 달도 말없이 넘어가는 날이다.
요사이 며칠, 병룡 군이 아파서 드러누워 앓고 있었다.
매우 몸이 괴로운 모양이었다.
연然이나 어찌할 수 없어 학교學校로 갔다.
아침 조회朝會를 본교本校에서 마치고 우리의 따뜻한 학급學級의 수양修養터 침천정枕泉亭으로 갔다.
산허리에 우뚝 서 상주읍尙州邑을 내려다보며 그 늠름한 기세氣勢를 자랑하고 있는 침천정枕泉亭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생물生物시간을 교육敎育시간으로 바꿔 교장校長 선생님이 우리들을 위僞해 본교本校에서 오시었다.
나는 교육敎育 2시간時間을 마치고 많은 감득感得을 가졌다. 내가 전前에 상주상산학교尙州尙山學校에서 교생敎生 15일 동안을 강습講習하여 그대로 국민학교國民學校에 배치配置된다면, 많은 아동兒童들에게 참으로 민주적民主的인 참된 교육敎育을 못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다.
2시간時間을 마친 후, 본교本校로 가서 여학생女學生은 운동장運動場 정리整理를 하고, 우리 남학생男學生은 각 리동各里洞으로 흩어져 있는 책상을 찾아다니었다.
하숙집으로 왔다.
아직 동생들은 가지 않고 중식을 먹었다.
곧 준비하여 앞 후천교 Mp에게로 가서 자동차自動車를 기다리었다.
거기에는 벌써 공검면恭儉面에 있는 학생學生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임 선생님도 오시어 함창咸昌에 소간所幹99이 계시어 우리와 함께 기다리시었다.
나는 보았다.
앞 초가집 우리의 동포同胞 한국여성韓國女性, 몸을 팔아가며 하루의 빵을 해결解決하는 여성女性 불쌍타! 그들에게는 어떠한 환경環境의 역경逆境에 부딪혀 소위 화류계100의 여성女性이 되고 말았을까?


아버지의 일기 83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1일(四月一日)일(日)흐림
작일昨日,101 자동차自動車에 몸을 실어 양정楊亭까지 무사無事히 도착到着하였다.
그 도중途中의 복잡함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었다.
학생學生들 모두는 그리운 고향故鄕을 가기에 복잡함을 무릅쓰고 올라앉아, 서로들 몸에 의지하여 자칫하면 백원白元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막 내리자 조금씩 비가 내려 우리의 걸음을 빨리하였다.
1주일週日 동안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어 급急히 방으로 가서 조금 후, 들에 다녀오시는 아버지를 맞이하였다.
학교學校에서 풍금을 연습하여 보던 중, 사방四方은 어둠살이 들었다. 어쩐지 날이 갈수록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워 요지부동搖之不動102하였다. 오! 뱃속까지 서린 사랑 1초秒라도 잊지 않던 그 ‘어머니’, 조금도 음성音聲 높이 하시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일일一一이 돌아보시어 주시고, 이 자者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듯이 가끔 가다가 나에게 말씀하시어 주시던 그때가 어제와 같다.
생시生時 ‘어머니’의 그 웃는 얼굴 한 번 더 보지 못할까? 만약萬若, 보게 된다면 나는 이 이상以上 더 바라지 않고 행복幸福한 생활生活을 하여 갈 것이다.
옛날 그 따뜻하고 그립던 고향故鄕, 지금은 오직 쓸쓸하고 구슬픈 내 고향, 다 쓰러져 가는 초가草家에 객인客人만이 있어 그저 후後걱정은 조금도 할 사이 없이, 오늘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풍부하게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어머님’의 그 살림살이가 객인客人의 만인萬人보다 몇만 배培 낫다는 것을 느끼는 동시同時에 그 사랑 그 시절時節이 다시금 그립다.
온갖 초목은 봄이 왔다고 순마다 노란 잎과 온갖 참새들 노래하며, 보리밭 곳곳마다 푸른 보리 잎의 완연完然한 모습을 나타내지만 한번 가신 ‘어머님’은 어찌나 못 오실까?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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