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허정연 기자
27편, 험블리 세계 여행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반하다!
다음날 오전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다. 전날과 다르게 너무도 화창한 날씨에 몸이 개운해 진 느낌이 든다. 쿨쿨 자고 있는 엄봉이를 깨워 호스텔에서 제공 되는 토스트와 블리니를 아침 식사로 밤새 비워 있던 배를 채운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중심 거리인 넵스키 대로를 따라 걸어 보기로 했다. 변덕스런 날씨는 어느새 다시 구름이 몰려와 흐려졌지만 비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우산에 가려져 있던 빗 속의 에르미타주와 겨울 광장의 모습은 사뭇 다르지만 여전히 멋진 모습에 우리 둘 다 신이 났다. 광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마구 뛰어 다니기도 했다.
이 곳을 활보 하던 우리는 광장 뒤편으로 나가 넵스키 대로에 진입 했다. 넵스키 대로 혹은 네프스키 대로(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의 명칭은 네바 강의 거리 라는 뜻이라고 한다. 해군성에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까지 4.5㎞로 뻗어 있는 이 거리는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의 상점들이 즐비해 있어 언제나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큰 대로를 따라 러시아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쭉 들어서 있다.
넵스키를 따라 쭉 가다 보면 모이카 강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여기에도 선착장이 있어 보트 투어를 호객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모이카 강을 지나 조금 더 걸어 가니 카잔 대성당이 보인다. 반원형 구조로 되어 있는 모습이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닮아 있는 카잔 대성당은 이탈리아 건축가인 바로나킨이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모델로 설계 했다고 한다. 이 성당이 완성 된 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성당 내부에는 승리의 트로피와 나폴레옹 군으로부터 탈취한 군기 등이 전시 되어 있다. 멋진 카잔 대성당의 모습을 감상하고 길을 나섰다.
이 무시무시한 이름의 이 교회 공식 명칭은 그리스도 부활 성당(Собор Воскресения Христова, Cathedral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인데 알렉산드르 2세 암살기도가 있었던 바로 그곳에 1883∼1907년에 걸쳐 세워져서 일명 '피의 사원'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피의 사원에서 '피'는 1881년 이곳에서 암살당한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피를 가리킨다.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곳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홀린 듯 넵스키 대로를 빠져 나와 이 곳을 향해 걸어 갔다. 가까이 다가 올수록 예쁜 이 교회의 모습에 매료 되는 듯 하다.
작은 강을 끼고 바라 보는 피의 구원 사원은 더욱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역시 수많은 관광객의 일부가 되어 한참을 신나게 이 곳을 즐겼다. 그러던 중 갈증을 느낀 우리는 잠시 목을 축일 카페를 찾아 다시 넵스키 대로로 향했다. 많은 카페들이 있으니 그 중 한 곳에서 갈증을 달랠까 하는데 상당히 번화가인 이곳의 맥주 가격은 한잔에 보통 300~400루블(약 6,000원) 정도이다. 한국에 비하면 그리 비싸진 않다고 생각 될 수 도 있으나 우리 같은 백수 여행자들에겐 매번 사치가 될 수 있다. 슬프지만 지독한 현실이다. 그러던 중 분위기 좋고 저렴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피의 구원사원에서 넵스키 대로로 가는 길에 위치한 이곳에서 아주 간단히 500cc 플라스틱 컵에 로컬 생맥주를 단돈 90루블(한화 1,800원 정도)로 즐길 수 있다!
곳곳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와 작은 공연들, 이런 모습을 자유롭게 즐기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나 역시 그만 바닥에 퍼져 앉아 버렸다. 광장 중앙에선 길거리 가수가 신나게 노래를 들려주니 아이들은 흥에 겨워 춤도 추고 연인들은 주위 시선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오 만의 햇살 아래에서 즐기는 여유에 너무도 행복해 졌던 우리는 조금 전에 느낀 피로감은 금새 잊혀 졌다..
계속 이곳에 앉아 해가 질 때 까지 있고 싶지만 이미 오후 6시가 훌쩍 넘어간 시간에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이곳은 백야가 한창이다. 밝은 저녁은 숙소에서 잠시 쉰 후 그나마 좀 어둑어둑한 자정쯤에 다시 나와 이 곳의 또 다른 모습을 즐기기로 한다. 독특한 느낌의 이 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언제든 다시 오고 싶은 곳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