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24,25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24,25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09.19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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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24)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1일(二月一日) 목(木) 맑음
오늘이 아버지의 생신生辰날이었던 것이다.
아침 조반 시朝飯時에 아버지의 말씀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앗!” 하였다.
전연全然 오늘이라는 것은 연然이나 어쩔 수 없어 오후午後에서야 ‘술’과 두부를 사다 드리었다.
도저히 이것은 자식子息의 도리道理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마음이야 오죽 서운하였으랴!! “용서하소서 아버지이시여!” 못난 이 자者를….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음력 12월 24일 이날은 잊지 않겠다고 마음속 깊게 결심決心하다.
12시경時頃에 자동차自動車 1대臺가 들어오다.
본즉 쌀을 *팔로 왔는가 싶다.
쌀 한 말 6천환, 오늘은 함창咸昌 장날이다.
농촌農村사람들이 ‘설’의 준비에 바쁜 듯이 모두 다 쌀과 곡식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었다.
벌써 해님은 서산西山에 지고 석반夕飯이었다.
이때에 또한 함창咸昌 어린 사촌四寸동생이 별안간 뜨거운 물에 디였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걱정에 저녁을 자시지 않다.
* 팔로 왔다는 상주사투리로 사러 왔다는 표현이다. 사다의 반어적 표현으로 표준어로는 어감이 맞지 않지만 생활언어로 사용되어 왔다. 사다와 팔다의 구분이 잘 안되지만 상황에 따라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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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25)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2일(二月二日) 금(金) 맑음
아침 일찍이 함창咸昌 4세歲 동생 아픈 데 가보려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따뜻하여 길 걷기에 좋은 날씨다.
가는 도중道中! 경관警官들께서 입초立哨를 서서 ‘도민증道民證’* 조사調査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 걸어가는 중, 또 경관警官 한 분이 조사를 세찰細察히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소지품所持品을 모조리 내놓아라 하기에 놓는 중, 돈 2천5백환도 같이 내놓았다.
이 순간 뒤로 돌아서라 하더니 일금 천환을 황급히 포켓에 넣더니 몸조심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환을 도로 찾고서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하였다.
적어도 모든 치안治安과 백성을 안심安心게 하는 *Intelligentsia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이 속계俗界에 있는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하리! 다만 이것은 이러한 시국時局이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숙모님께 가본즉 어린 동생 춘자春子는 얼굴을 디여서 울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고운 어린아이의 얼굴을 배리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연然이나 어찌할 수 없어 중식을 먹고 나섰다.
길거리에는 ‘피란민’들이 온 도로道路를 차지하여 하루 삼식三食을 얻으려고 음식을 가지고 팔고 있다.
또한 군품軍品을 실은 자동차自動車도 끊임없이 ‘흰’ 먼지를 내면서 쉬지 않고 연달아 달리고 있다.
* 지식계급, 인텔리,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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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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