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28,29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28,29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09.21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의 일기 (28)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5일(二月五日) 월(月) 맑음
오늘은 음력 12월 29일, 그야말로 경인년도 막가는 섣달 그믐날이다.
집집마다 내일 ‘설’ 준비에 온갖 맛좋은 음식을 장만하기에 아침부터 동네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일하고 있다.
오늘로써 벌써 20세歲라는 풍난風難의 고개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19세歲라는 years를 넘었던 것이었다.
아! 참으로 부끄럽고 슬픈 날이다.
19년 동안 내가 무엇을 이루었나? 한심도 하다.
다만 부모父母님의 어리광 속에서 19년을 보냈던 것이다.
지금과 어릴 때의 일을 한번 생각할 때 아주 180˚로 확 틀리다.
왜냐하면? 어릴 때는 그래도 ‘설’이라 하면 며칠이나 남았냐? 하며 조그마한 손을 꼽아 기다렸건만! 지금은 오히려 ‘설’이라는 한 자를 원망하는 기분氣分이 일어난다.
어릴 때는 오늘밤 잠을 가리지 않고 동무들과 같이 밤을 새워 가며 놀았으나 오늘은 곧 꿈나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일기 (29)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6일(二月六日) 화(火) 맑음
먼 촌락에서 *은은히 들리어 오는 첫 닭소리와 함께 신묘년辛卯年의 새해를 맞이하였다.
어둡던 사방四方은 환히 밝아 올해 조국통일과 무사無事함을 알리는 듯한 밝은 아침이다.
곧 ‘어머니’ 묘지墓地에 가 섰다.
그러나 그립던 ‘어머니’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누구 하나 대답對答없는 이 산천山川에 다만 지, 누런 ‘어머니’ 무덤만이 이 가슴을 애태우는 것이다.
여기서 돌아온 후, 집안의 어르신들과 제사를 지내고 양정楊亭 할아버지에게 세배歲拜하러 갔었다.
거기에 가도 역시 반가움 기쁨 조금도 없이 오늘이 나에게는 오히려 원망스러운 ‘설’ 참으로 서러운 ‘설’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조금이라도 기쁨이 있을 것이다.
오후午後에는 동네 노인老人들에게 세배를 하고 밤에는 창원 댁에서 밤 늦게까지 놀다.
신묘년辛卯年의 첫걸음이다. 싸우자 희망봉希望峯으로!
* 소리가 아득하여 들릴 듯 말 듯하게.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본 사 :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공원로 1
  • 법인명 : (주)영남연합신문
  • 제 호 : 영남연합뉴스 / 연합환경뉴스
  • 등록번호 : 부산, 아00283 / 부산, 아00546
  • 등록일 : 2017-06-29
  • 발행일 : 2017-07-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창훈
  • 대표전화 : 051-636-1116
  • 팩 스 : 051-793-0790
  • 발행·편집인 : 대표이사/회장 강대현
  • 영남연합뉴스와 연합환경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영남연합뉴스·연합환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nyh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