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30~32일차)
(연재)아버지의 일기(30~32일차)
  • 김소정
  • 승인 2017.09.2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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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30)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7일(二月七日) 수(水) 맑음
이제 방학放學도 10일간뿐이다.
이 동안 나는 한 것이 무엇이냐 아무것도 없다.
이제 와 생각하니 모든 것이 후회막심後悔莫甚하다.
방학放學 동안 공부하려고 프로그램을 세워놓았으나 전란戰亂의 소란, 이것으로 말미암아 향학심向學心에 불타는 학도學徒들은 많은 장해障害가 되었을 것이다.
올해는 모두들 ‘설’을 무사無事히 지났으나 그리 기쁘게 노는 모습이 작년昨年보다 아주 딴판이다.
오늘은 편지 한 장을 쓰다.
밤에는 청년들의 노는 장소에서 밤늦게까지 놀았다.
도화는 무삼 일로 홍장을 지어내서 동풍 세우에 눈물을 머금는고 *삼춘三春이 **쉬우냥하여 그를 ***설워하노라
- ****안민영
* ① 음력으로 봄의 삼개월.(즉 맹춘孟春·중춘仲春·계춘季春을 말함) ② 음력 삼월. 삼춘지절三春之季 ③ 세 번의 봄. 3년을 비유함.
** 쉬우냥→ 쉬운 양 → 쉬운 듯하여 →시샘한 듯하여
*** 복사꽃은 무슨 까닭으로 붉은 단장을 하고서 봄바람에 나부끼는 이슬비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있는고. 석 달 동안의 봄이 아쉬워 그것을 슬퍼하노라. 사람들은 봄꽃이 무상하게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춘광春光의 덧없음을 아쉬워하곤 한다 하여 “꽃 이 어제 밤비에 피었는데, 오늘 아침 바람에 진다.” 화개작야우花開昨夜雨, 화락금조풍花落今朝風이라 하였다.
**** 조선의 가객歌客. 도화가桃花歌를 지어 속절 없이 가는 봄을 애석해했다.


아버지의 일기 (31)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8일(二月八日) 목(木) 맑음 뒤, 대설(大雪)
아침에 눈을 뜨니 전투기 4기機가 낮게 떠서 쏜살같이 달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전과戰果가 불리不利하지 않나 하며 염려하고 있다.
또한, 오늘은 유달리 비행기 더 낮게 떠서 우리 ‘고장’을 돌고 있었다.
중식을 먹은 후, 학교學校로 가서 ‘뽈’을 찼다.
그리고 동네 이종학李鐘學 형 모친母親의 회갑일回甲日이다.
마을노인老人 할머니들이 가서 기쁘게 이야기를 하며 하루 해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슬펐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우러나왔다.
나의 ‘어머니’도 살아 계셨다면 마을 할머니들과 같이 오늘을 즐겁게 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나서, 별안간 남모르는 눈물이 폭포수 같이 흘러 어둠침침한 옆방에서 울고 울었다.
눈 내리는 밤이다
양정楊亭 아저씨가 오시어 우리 집안 생활형편生活形便을 이야기 또한 상의相議하였다. 그러나 삼촌 숙부三寸淑父께서는 도리어 노怒하시어 그냥 밖으로 휙 나갔다.
기막힘과 곤란에 쌓인 우리 가산家産.


아버지의 일기 (32)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9일(二月九日) 금(金) 눈, 구름
아침에 일어나 앞 문門을 열고 본즉, 백꽃 같은 함박눈이 온 산천山川을 은색銀色으로 변變하였다.
뒷산 소나무에는 흰 눈을 이고 가지마다 눈을 못 이기는 듯이 축 늘어져 있다.
조반朝飯을 먹고 작은아버지와 함께 눈을 치웠다.
그리고는 또 눈사람을 만들고 참새 덫을 놓았다.
오후午後에는 종학 댁에 가서 여러 청년들과 같이 놀았다.
석반夕飯을 먹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 해님의 빛을 받아 빛나는 달님보다 백百 가지 빛을 뽑는 호롱불.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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