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아침 기운에 눈을 떴다. 게르 내부에 불을 지피는 스토브가 있지만 불이 오래 지속 되지 않아 계속해서 불을 지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우리 역시 전날 밤 잠들기 전에 피워 둔 불이 잠든 사이에 꺼지자 게르 내부는 금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코끝에서 싸늘한 공기가 느껴 질 정도였다. 찌뿌둥한 몸을 쭉 펼치며 게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니 어느새 밝아진 하늘 아래 따스한 햇살이 비추자 굳어있던 몸과 마음까지 사르르 녹는다.
아침식사를 위해 주인집 거실로 들어가자 다른 몇몇의 여행자들도 모여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배불리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친절히 잘 대해 주신 숙소의 주인집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는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나와 이 곳에서부터 약 300km 정도 떨어 진 바가 가즈린 츨루(Baga Gazrin Chuluu)로 향했다.
길 곳곳에 보이는 게르들이 이곳이 몽골임을 보여주고 있다..
데기는 가는 도중에 보여줄 것이 있다며 우리를 밖으로 안내한다. 작은 언덕 위로 색색의 천들과 함께 돌을 쌓아 올린 큰 돌무지가 보인다. 이것은 어워(Ovoo)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몽골인들은 이 곳을 신성시 여기며 시계 방향으로 정성껏 돌을 올리고 세 번 돌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우리 역시 소원이 간절히 이루어 지길 바라며 주변의 돌을 주워 시계 방향으로 세번 돌며 소원을 빌었다. '부디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하며 우리 역시 더 성장해 나가기를…'
그 앞으로 커다란 새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몽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벌쳐(Vulture) 라는 커다란 몽골 검은 독수리이다.
날개를 펼치면 약 2.5m나 되는 크기의 벌쳐는 사냥을 하기 보다는 주로 죽은 고기를 먹는 청소부 같은 역할을 한다. 신기한 모습에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가 보니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날개를 펼쳐 날아 오르며 야생에 있어야 더 멋있을 녀석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에 이용되어 발이 묶인 채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 곳을 뒤로 하고 우리 푸르공은 열심히 몽골의 벌판을 달렸다. 포장이 잘 된 도로가 있는가 하면 포장 도로라도 곳곳이 파여 있기도 하고 아예 비포장 길로 가기라도 하면 안그래도 덜컹거리는 푸르공이 더 요동을 친다. 이렇게 달려 어느덧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임을 알리고 감바 아저씨는 넓은 초원으로 들어가 차를 세운다.
야호!!!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푸른 하늘 아래 양과 염소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는 옆에서 노상 식사라니 피크닉 온 느낌도 들고 기분도 좋고 너무도 낭만적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들이 풀을 먹고 싸놓은 똥과 함께라는 것!!!
어느새 조그만 테이블 위 데기가 정성껏 만든 점심식사가 완성 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야채 볶음면과 데기가 우리를 위해 한인마트에서 샀다는 초고추장까지 더해져 어느새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큰 물통에 담아온 물로 최소한 아껴가며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그들의 방식으로 설거지까지 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 푸르공은 끝없는 도로를 달리고 또 달리다 화장실도 갈 겸 다리도 좀 펼 겸 해서 가던 길 중 잠시 쉬기도 했다. 화장실이 어디냐는 물음에 데기는
“Toilet is everywhere. (이 모든 곳이 화장실이야.)” 라는 대답…
이 곳 몽골의 대 자연 위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 적잖이 당황한 내 모습에 데기는 깔깔 웃으며 곧 익숙해 질 거라 하면서 나를 다독여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을 해결하고 끝도 없는 평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치 않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끝없이 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바가 가즈린 츨루로 향해 달려갔다. 바가 가즈린 츨루(Baga Gazrin Chuluu)는 직역하면 ‘작은 바위들이 있는 땅’ 이라는 뜻으로 이 곳을 시작으로 고비(Gobi) 사막 지역이 펼쳐진다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바위들이 비와 바람에 의해 예쁘게 조각 되어 있는 바가 가즈린 츨루는 어느덧 해질녘이 되자 신비로움과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바가 가즈린 츨루 곳곳을 둘러보면서 작은 돌산 위로 오르니 넓은 몽골의 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 하다. 소음도 공해도 없는 평화로운 이 곳에서 잠시 눈을 감으니 스치는 바람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 진다.
“데기! 요위~!”(데기야! 가자!)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 줄 푸르공이 기다리고 있다.
험블리 부부의 세계여행!